◐김ㅺ 방랑 삼천리/산이서와 해남 43

이보다 더 멋진 흰구름 보셨나요? 7월을 보내는 날

노래가 있었습니다. '구름이♬ 구름이 하늘에서 그림을 그림을 그립니다♬..............' 구름은 순식간에 천천히 여러가지 모양으로 그려줍니다. 예전엔 아이들의 친구라는게 구름, 별, 달, 동산, 냇가였지요. 아, 매미도 있었는데 지금처럼 엔진소리내며 밤,낮으로 울어대진 않았어요. 예..

황조별묘에 모셔진 진린장군의 위패

이제 '황조별묘'의 뜻을 알아보자 황조별묘는 해남군 향토문화유적 제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재지는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황조마을 317번지에 있다. 정유재란(1597)때 명나라에서 조선 구원군 수군도독으로 왔던 진린 장군과 후손들의 위패를 모시고 향사(享祀)하는 곳이다. 진린은 군선 500여척을 이끌고 와서 고금도(강진군), 녹도, 금당도(완도) 등에서 충무공이순신과 함께 왜적을 방어하였으며, 이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그의 죽음을 애석해하며 제문을 짓기도 하였다. 이 곳이 진린과 관련된 것은 진린의 손자인 진영소(1644~)가 명나라가 멸망하면서 진린의 유지에 따라 중국의 광주로부터 관왕묘가 있는 고금도(강진군)에 이주하여 거소를 정한데서 비롯된다. 그 뒤 진영소의 아들 석권과 윤권은 해남으로..

진린 장군의 위패를 모신 해남 산이면 황조리의 황조별묘

해남군 산이면 황조리에 정유재란 당시 큰 전공을 세우신 진린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곳에는 70여호가 살고 있는대 대부분 장군의 후손들이며 타성받이는 시집을 온 외가쪽의 성씨들이라고 한다. 일가 친척으로 이루어져 타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성방가와 같은 유형은 찾아볼 수 없고 차분하고 안정된 생활 모습이다. 7,80년대에 전형적인 어업중심의 마을에 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갯내음이 사라지고 농업중심의 사회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일터를 찾거나, 편리한 교통, 교육 등으로 도회지로 많아 떠나는 바람에 2008학년도 기준 산이서초등학교 재학생은 1명에 불과하며 70대 노인들이 노동의 중심축을 이루고 기계화된 영농을 하고 있다. 대부분 근면한 탓에 좋은 주택을 짓고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