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Canada/오타와 14

캐나다의 한국전쟁 참전과 깡통을 든 소년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국회의사당엘 갔었습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에 캐나다는 그리 많지 않은 인구에도 육해공군이 모두 참전한 나라중 하나였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미국, 캐나다 그리고 많은 서양사람들은 정직하게 돈을 벌고 자선사업하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기록을 영어, 프랑스어로 대리석에 새겨 영구히 보관해 두고 있습니다. 캐나다군은 한국전에 약 27,000여명이 참전하였는데 그들 중에서 51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당시에 전사한 장병들의 이름을 곱게 새겨 방문객들이 살펴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같은 수준 이상의 댓가를 치를 때까지 고마워해야할 빚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퀘백의 시타델 요새를 찾았습니다. 현역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라. 개별 관광은 안되고 반드시 ..

리도운하를 거슬러올라가는 요트들 - 동영상

학창시절 운하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궁금증만 더해갔었는데 실제로 보니 너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여기는 4대강 운하와는 달리 낙차가 큰 강과 호수를 잇는 역할을 하는 운하입니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와 킹스톤을 연결해주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오타와 국회의사당, 총독관저 무료 안내받기

캐나다 국회의사당 근위병 교대식을 참관하고 건물 바깥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니 무료 안내소가 있었다. 즉시 받았지만 한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영어, 불어 팀을 모집한다. 한마디라도 알아들으려니 영어팀을 선택하였다. 현재시각에 집무를 보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야 했고, 금속탐지기에서 몸 수색도 받아야 했다. 번거러워도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한 눈에도 오래된 듯 보이는 유럽풍 고딕양식의 석조 건물인 부식된 푸르스름한 지붕 때문에 수백년의 나이로 포장되었다. Parliament Hill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오타와강과 리도 강 합류 지점의 언덕에있다. 캐나다 정치를 주름잡는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의사당 건물이 가진 건축학적인 완성도도 높으며 center block이라고..

캐나다 근위병의 모자

한여름 무더위에 근위병은 털모자를 쓰고 있는 이유는 뭘까? 말이 안통해서 물어볼 수는 없고.... 영국 런던 버킹엄궁전에서는 근위병들을 연중 볼 수 있으며 (영국 연방이었던 캐나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특히 근위병 교대식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버킹엄궁전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릅니다.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XX를 가면 OO을 꼭 보고와야 한다는 식으로......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다녀오면 안되는 것처럼 말합니다.그래서 패키지 관광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영국 근위병의 모자는 곰의 털가죽이라 합니다.1815년 워털루전에서 영국군은 곰 털가죽 모자를 쓴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를 무찔러 너무 기분 좋은 영국 왕실이 곰 털가죽 모자를 쓸 수 있는 권리를 영국군에 주었는데괜찮은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해..

몬트리올 성요셉 성당 - 천주교 신도들이 살아 생전에 꼭

성당만큼이나 유명하신분 앙드레 조셉 신부님은 바티칸의 미움을 받아 이곳에 오셨습니다. 당시에는 벽지로 좌천된 셈입니다. 성요셉 성당은 몬트리올에서 제일 높은 언덕 ‘ 몽르와이알 ’ 꼭대기 퀸마리 라는 곳에 있습니다. 먼곳에서 성당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 예사로운 성당이 아님을 직감했지만 주차를 하고나니 너무나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라 한눈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신부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걷지 못하던 환자들이 지팡이를 내려놓게되어 걸어나간 기적의 성당에는 환자들이 버리고 간 지팡이 보관소도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제 본분을 다하신 성직자 유명한 성직자들의 멋진 설교에서 한가지씩만 제대로 변하고 실천해왔다면 세상은 천국으로 변해버렸을 텐데........... 신자들은 성지 순례하는 마음으로 참배한다고..

노트르담 성당 (Notre-Dame Catheral Basilica)

노트르담 성당하면 프랑스의 것을 떠올린다. 원조 성당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839년 애초 자그마한 성당자리에 건립 계획을 세우고, 1841년부터 1865년까지 단계적으로 공사를 하여 완성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네오 클래식 양식으로 설계되었으나 건물의 아랫부분이 완성된 1844년 네오 고딕 양식으로 변경하였다 합니다. 때문에 성당의 정문 등 아래 부분은 네오 클래식 양식으로, 나머지 부분은 네오 고딕 양식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성당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은빛 첨탑은 1858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은빛으로 빛나는 두 개의 첨탑과 첨탑 사이의 금박 입힌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은 주변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것이 특징이다. 햇빛이 비치명 강한 반사빛으로 쉽게 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