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생활42, 퇴직 후 살이/1975황산서

2019 황산서교 4회 제자들이 선생님께 호 증정식 & 송년회

arakims 2019. 12. 16. 22:04

제자들에게 호를 받아서

이제 '허공' 선생이 되었습니다.

 

교직생활을 마치고 퇴직하면

날마다 놀기도 지겨운데~

가장 즐거운 날이라면

제자들을 만나는 날이다.

 

 

 

나는 제자들 만나는게 부끄럽지 않다.

그만큼 열심히 가르쳤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 조금 열심히 했던

대우를 받는 듯 싶어진다.

이달 들어 세번째

제자들의 부름을 받는다.

 

서울에 자리를 만들어 놓고

목포에서 서울까지 편하게 모신다고

왕복 KTX 승차권을 보내 왔네요.

 

 

제자들이 선생님께 드리는

'호'와 상장

 

제자들이 선생님께 호를 지어 올리고

상장을 수여한다는 일

들어보기나 하셨나요?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일입니다.

 

 

 

제자에게서 받아보는 상장은

처음이며

아직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이 참으로

소중했었다는 것을 느꼈기에

동창회의 이름으로 선생님께 상장을 드리고

엄청 많은 액수의 장학금까지.....

서너달 전에도 받았는데 또,,,,,

뜻깊은 장학금으로 뭘 할까?  

제자들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궁리하고 있습니다.

회장 상학이, 총무 혜숙이 고마워~

 

나는 오늘 다시한번 외쳐봅니다.

"나는 스승됨을 자부합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지에서

내가 손수 가꾸어 보았던 새싹들이

이제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기둥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판단할 줄 압니다.

누가 바른 길로 이끌어주려고

많이 애써주신 선생님인지....

 

내가 그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는게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뭐라고 자꾸 외쳐보고 싶습니다.

 

 

 

46년전 그 시절

흑백영화 한편 보여주려고

영사기 교육청에서 빌려와 

'걸리버 여행기' 상영하던 시절

그때의 감동이 다시 재현되는 듯합니다.

 

그거 틀어주다 전압이 고르지 못한

시골학교 사정으로

영사기 쇼트가 나서

고장난 부품 트랜지스터 교체하느라

석달분 봉급이 날아갔어.....

그땐 부품값이 부르는게

수리비였을 때였어....

 

교장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은

영화 상영을 했기 때문에

학교 돈으로 수리해주지 않아서

내가 고쳐야해서

독박을 쓸 수 밖에 없었었거든.....

 

 

교직생활이 일부 그랬습니다.

잘 가르치나

그럭저럭 시간만 보내나

봉급은 똑 같이 받았습니다.

대부분 대충 가르치고 말았었죠.

 

하지만 지금

똑 같은 연금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제자들이 찾아오는 기쁨이

남 다르게 느껴 옵니다.

이들에게 뭐라고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지..... 

 

이제는 간결하게

"건강하고 행복해라!"

 

 

나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 이라는 것은

초등학교 시절에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이었지

 

지금은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리더로 활약하고 있는

당신들에게는

이제 필요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좋은 지식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싶고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어서

제자들이 한없이 고맙고

그동안 교직생활을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한

감사의 선물로 생각한다고요.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경애씨

43년전 초등학교 수학여행 무렵에

장기간 엄마 아빠가 먼곳에 계셔서

수학여행비를 못낼 형편이라

용기를 내서 선생님께

아빠 오시면 드리기로 하고 저 수학여행........ㅎㅎ

 

서운하게도 선생님의 답변은

"내가 금고냐?"

 

너무나 서운한 나머지

학과 수업 내내

선생님이 미워서 저렇듯이

고개를 돌리고

하교 시간만을 기다렸는데~

 

선생님은 나중

나를 조용히 불러서

내일 수학여행갈 준비 해와~

이래서 너무 고마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었다는

경애의 후일담

지금도 그 수학여행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니 반갑기만 합니다.

 

- 놀릴려고 농담으로

"내가 금고냐? 이랬지 싶은데?"-

 

 

자꾸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졸라서

분위기 깨트리지 않으려고

1. 꽃을 든 남자

2. 봉선화 연정

이렇게 조금은 가볍고 빠른 곡을 선물했다.

하모니카는 조금 자신이 있는데

색소폰을 곁들인 라이브곡을 부르기는

실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풍금 소리를 들으며

음악 수업을 했던 기억이 승화되어

피아노 소리로 착각하는 제자도 있었다.

 

당시에 풍금 연주 못하여

음악 수업을 건너뛰는 선생님

너무나 많았었지

 

 

 

난 그래도 풍금 연주하며

음악 수업 즐겁게 해냈었어

 

보순이가 떠올린 '오빠생각'

이 노래 내가 많이 가르쳤었다는데

교과서에는 없는 곡이었고

대학시절 열심히 배우고

불러왔던 곡이라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 같다.

 

....

 

 

4학년을 마치기 전에 전학을 가버린

정일기, 양동용...

이런 친구들은 어떻게

넓은 서울에서 찾아서

동창회에 초대를 하였는지

참으로 대단한 제자들입니다.

 

양동용이는 양춘승 교감선생님의

아들이라

너무나 잘 알려졌었는데

어렸을 적의 큰 눈은 조금 작아지고

아빠를 많이 닮아 가고 있었다.

정일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4학년 때 전학가는 날

선생님이 불러서

다른 학교에 가거든

열심히 학교 활동하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셔서

500여명되는 학교에 가서

전교 어린이 회장도 한적이 있었기에

그 당시의 격려 말씀이 계기가 되었다고

지나간 추억을 활동사진 보듯

얘기 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양숙이는 수년전 해남에서 만났을때

주위에서 군의원 출마를

권한다고 했을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한적이 있었는데

그 뒤의 소식을 물어보지 못하고

헤어졌네요.

 

 

적당히 가르쳐도 봉급 나온다고

동료들이 늘 핀잔을 주고

왕따 시키던 초임 교사 시절....

제자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후로 지금

나는 제자들로 부터

초대를 받았고

호를 증정 받았고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상장을 받았습니다.

교직생활 하면서 나쁜 추억들

훈훈한 봄비 내려

겨우내 쌓였던 잔설이 녹아버리 듯

마음이 개운해지고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여건이 허락하면

오늘 참석하지 못한 제자들도

모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