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Japan/교토

고향 일본식 우리집이 생각나네요.

arakims 2018. 2. 7. 18:11


일본 교토 청수사를 갔었습니다.

그곳에 일본 전통 가옥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목조 이층 상가 건물

사실 시골에서 살던 집이

일본 사람들이 살던 집들을

해방이 되자마자 정부가 모두 압수하여

국민들에게 분양하였는데

이런 집을 적의 재산이라하여 적산 가옥이라 하였습니다.

해방후

적산 가옥 처럼 좋은 집에 살려면

정부가 정하는 일정 금액을

15년동안 분할하여 상환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소득이 없거나 적은 세대는

이렇듯 비싸고 큰 주택은 분양을 받지 못하였으며

집하나를 여러 세대가 나누어서 분양 받게되고

집한채에 두어 세대가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골에서 유일하게 우리집만 이층집이었으므로

친구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초가집에서 살던 친구들은

이층짐에 올가가보는 게

부러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던가 봅니다.

남아있는 시골집 사진이 없어 아쉽습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여러가지 생활 소품들이 많이 있어서

지금 일본 박물관에 가보면

익숙한게 많습니다.


여관 건물이어서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종이로 만든 문으로

방과 방사이를 나누었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 일본 아파트엘 갔는데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종이문으로

방과 방 사이를 나누고 살고 있었습니다.

옆방 소리가 다 들리므로

프라이버시 보호가 되지 않음은 당연합니다.


이런 주택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토와 나라를 관광하면서

일본 집의 추억이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일본말이 주위에 많이 남아있었고

그런 환경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잿빛 가득했던 시절

당시에는 우리 관상대가 낙후해서

태풍이 불면 일본 라디오 방송을 들어서 대비하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여튼

일본하면 떠오르는게

이런 밝지 못한 색깔입니다.



어릴적 많이들은 일본어

구루마, 다꽝, 아르바시, 데꼬보꼬, 시로또 미나라이, 도끼다시, 아라이다시, 하꼬, 히끼, 시로, 아메다마, 니야까, 뽀인또, 기리까이, 시다바리, 아사히, 미깡, 수루메, 에끼마에, 히야까시, 벤또, 미싱, 도라꾸, 아다라시, 사까쓰끼, 도라무통, 스빠나, 뻰찌, 도라이바, 아까정끼, 기리까이, 아싸리, 히끼야끼, 스메끼리, 덴찌, 뎅끼, 히야까시, 이빠이, 나미나미, 소데나시, 하꼬방, 젠사이, 사구라,


일본어에서 발음만 바꾸어 쓰는 말(어쩌나 이건 엄청 많은데...)

학교, 역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기차, 전차, 졸업, 송사, 답사, 기념, 매일신문........... ---> 일본말을 한글로 바꾸어 우리와 발음만 다르지 지금 일본 사람들이 쓰고 있음.




친절하게 보이는 일본인의 장사 수완에 속지 않아야 하는데요.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에도

일본인들은 한국인 손님이 오면 깎듯이 절을 하며 맞았다고 합니다.

장삿꾼의 입장에서 한국인이 높아서가 아니라 고객이었으므로, 말하자면 돈이므로

친절하게 대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일본 관광을 해보면 친절합니다.

식당에 들러도 친절하고, 상품 가게에서도 친절합니다.


일본 여행이 저렴해졌다는 기사가 떳는데

댓글을 달고 있는 대부분이

국내여행보다 더 좋다는 반응입니다.

큰일입니다.

국내 여행지가 너무 욕을 먹고 있습니다.

비싼 바가지 물가, 불친절 등을 적라라하게 적어 놓았네요.

관련기사와 댓글 링크===> http://v.media.daum.net/v/20180207030230526

고객들의 반응이라 생각하고

국내 여행지의 관련 종사자들이 대책을 세웠으면 합니다.

한국이 어려워지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너져 텃밭이 되어버린 일본식 고향집은

내가 성장하는 임시 보금자리였을뿐

지금은

한국 기술자들이 지은

비록 임대료를 내고 살지만

작은 아파트에서 내일을 위한 꿈을 꾸며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