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India/델리

후마윤의 무덤 - 후마윤의 묘-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두번째로 등록된 인도의 무덤

arakims 2013. 10. 29. 12:25

 

 

 인도의 역사에서 무굴제국은 평점이 높은 편에 속한다.

후마 윤은 무굴제국의 2대 왕으로 짧은 재위기간 속에 페르시아 출신의

사랑하는 아내 Haj begum의 지시로 1565년에 건설되었다.

이 건축 양식은 훗날 타지마할 묘를 건설하는데 영향을 주게된다.

먼저 건설된 묘 이지만, 유네스코 등록은 타지마할에 밀리게 된다.

 입장료 수입이 괜찮았는지 보수공사가 한창입니다.

외국인이라고 내국인의 스물다섯배쯤 되는 

250루피(or US$5)를 내고 입장하니 봐야할 게 많은 것 같다.

인도에서 주의할 일은 고액권을 내밀어야할 경우에

거스름돈을 준비하지 않고 있을 때가 많아 포기해야하는 용기도 길러두심이

정신건강에 해를 덜 끼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보수 인지 모르겠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긴 문화재를 전혀 다른 색채로 단장을 하고 있으니....

이래서 세계사는 근대사라고 합니다.

낡아 보이는 역사의 사실을 근대사관에 의해 재편성하여 기록하며 많은 오류가 발생합니다.

오늘날의 세계사는 다시 평가해 기록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많이들 현대인의 평가 잣대에 의한 생각으로 굳어버렸지만...

 설계자는 페르샤 출신의 건축가 미락 미르자 기아스이며

페르시아 건축의 기본적인 틀을 창조적으로 변형하여

무굴 양식이라는 새로운 건축기법을 창조하였다.

후마윤의 무덤은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건축과 구별되는 무굴양식으로 평가 받고 있다.

후마윤 묘의 정문인 부 할리마의 문도 훌륭한 건축물이다.

좌우의 대칭에서 오는 밋밋함을 줄이기위해 좌우의 각도를 주었던 것이

입구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일종의 통과문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후마윤의 건축물은 무굴시대 건축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것으로

많은 건축물을 남기는데 타지마할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되는 평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타지마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묘당(墓堂)은 역시 붉은색 사암에 흰색 대리석으로 멋을 냈는데,

붉은 빛깔이 남성적인 건축물로 평가하게 한다.

특히 타지마할에 비하여 좌우의 폭이 넓은 안정감,

묘당의 기단(基壇)이 되는 아래층이 높으면서도 좌우 펼침,

묘당(墓堂)의 큰 돔을 크지 않게 보이게 하는 착시(錯視)현상 등이 특징이라 한다. 

 

 

타지마할이 여성적인 건축물로 평가 받는 이유중 하나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편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밝은 색, 반짝이는 소재로 축조되었다.

후마윤 묘(Humayun's Tomb)는 남성적인 건축물로 타지마할과 비교되고 있다.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내 허지 베검(Haji Begum)’의 덕분에 축조되었다.

비록 호화스러운 재료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건축학상으로 안정된 구조에,

붉은 색채는 남성적이라 평가 받는다..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정원의 설계등은 무굴시대의 건축 양식의 시작으로 평가 받으며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타지마할의 건축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타지 마할(Tai Mahal)과 후마윤의 묘(Humayun's Tomb) 인도가 가진 

무덤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두개나 등록이 된다

 

 모든 건축물이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비슷하게 보이도록 설계하였으며

정원 또한 사각형이나 유리창 형태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물길을 만들었는데 이는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문화가 사막에서 발생하다보니 물의 존재 가치가 매우 높기때문에

건축물을 둘러싼 사방으로 흐르는 물길은 낙원에 안장된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이 곳에는 후마윤이외에 부인 하지 베굼, 무굴시대 마지막 황제 자리 다툼의 주인공

아우랑 제브와 격돌했던 사 자한의 장남 다라 사코 등도 함께 묻혀있다. 

무굴제국은  인도 통치한 마지막 이슬람 제국(1526~1858)이다.

북인도 침입한 바부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웠으며,

바르 황제 제국 기초 확립하고

아우랑황제 인도 데칸 지방까지 차지하여 전성기 이루었다.

그러나 내란 제후 자립 따위 급속히 쇠퇴하면서

1757 실질적 영국 치하 들어갔으며, 1858 영국에게 완전히 정복되었다.

묘당(墓堂)은 중앙에 크고 화려한 묘실(墓室)이 있고,

돔의 천정은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으며,

그 중앙에는 보석을 박아 만든 파란색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아름다운 그 꽃 아래에 흰 대리석의 후마윤(Humayun)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

무덤의 경 내외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는 좌우 사방대칭의 문양

정교함은 무굴시대를 대변하는 예술의 혼을 맛보는 것 같다. 

 

무굴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Humayun 재위 1530 - 1556))은 

아버지 바부르 (Babur, 1526 -1530)에 의해 왕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프칸 세력의 공격에 밀려 아프카니스탄으로 망명하게되고,

15년간의 망명과 자신의 제국을 찾기 위해 오랜 전투로

다시 왕위에 올라 6개월이 지나던 날 델리에 있는 자신의 도서관 계단에서 실족한다.

철학자 왕의 죽음은, 남은 가족에게는 뜻하지 않은 슬픔이되었다.

아내와 아들들에 의해 묘()가 완성되었으며 화려한 장례속에 영면하고 있다고 한다.

후마윤(Humayun) 묘역(墓域)의 입구 오른쪽에는 별개의 작은 묘역으로 연결이 된다.

야트막한 담을 둘러치고 기단(基壇)도 없이 작은 돔을 얹은 팔각형의 묘실(墓室)이 있는 조그만 묘역이다. 비록 낡고 퇴락(頹落)했지만 보수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담한 모습이다.

하지만 작은 모스크를 보면 단순한 부속건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조금은 생뚱맞은 건축같다고 생각하는데 안내판을 보니

 이사 칸의 묘()(Isa Khan Tomb)’과 이사 칸 니야지(Isa Khan Niyagi)’라는

귀족의 무덤이라고 되어있다.

후마윤 묘(Humayun's Tomb)’가 세워지기 20년 전에 만들어졌고,

묘실에는 예사롭지 않은 장식과,

주인공과 그 가족인 것인 듯한 관()들이 모셔져 있었다.

 

<타지마할=여성적><후마윤의 무덤=남성적>

여성미 가득한 타지마할 http://blog.daum.net/arakims/15959145

가난한 이들을 위한 타지마할 비비 까 마끄바라 http://blog.daum.net/arakims/15959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