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는 젊은 나이에 황제에 등극하였다.
노비제도를 없애고, 혁신적인 국내 정치 개혁, 안정된 국민생활
정치적 안정과 아프리카 연합의 주도적인 역할 수행등등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노쇠한 황제는
가뭄으로 기아선상에서 수십만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문제등으로 말미암아
지도력에 타격을 입게된다.
왕조제도에서는
늙은 왕이 노쇠해지거나 판단력이 흐려지더라도
양위하는 방법이 죽기를 기다리는 동안
제대로된 국사를 살필 수 없게된다.
황제가 죽어 새로 등극한 어린 황제가 영민하다는 보장을
누가 할 것인가?
그래서 현대 국가들은 입헌국주제를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중심제도 비슷한 단점이 있기는 하다.
쿠데타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셀라시에 황제의 장례식이
20여년만에 치루게 되었지만
수천명에 불과한 하객들뿐, 쓸쓸한 영면의 길을 가게되었다.
수십년의 공산주의 지배하에서
하루 하루 살기 힘들어진
가난한 에티오피아 백성들은 더이상 황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보내줄 형편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6.25때 파병된 에티오피아 군이 보았던 우리나라 형편보다 못한 에티오피아의 현실임)
조선은 일본이나 중국과 다르게
봉건왕조가 아니었다.
발전된 중앙집권 왕조였기에
왕이 직접 중앙과 지방관리들을 선발하여 임명한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박XX 정권에서 보듯이
왕을 중심으로 하는 관리들이 무능하거나 부패하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우리의 경우는 황제가 노쇠한 탓도 있지만
개화기를 놓치고 쇄국정책과 같은 정책과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망설였고
미래를 대비한 국가적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여
제자리에 머물면서 쇠퇴를 거듭하였다.
어쨌든
기울어가는 가난한 나라 조선의 황제 고종은
개화에 실패한 조선의 마지막 임금으로서
개혁을 꿈꾸던 황제는
강대국의 각축전과 밀려드는 일본에 맞서
헤이그 밀사 보내기, 아관파천, 등등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독립을 위해 창간되고 조직되었던
독립신문이나 독립협회마저도 황제를 배신하고
유학을 다녀오고 신식 문물을 접하고 배운 사람일 수록
황제를 공격하고 일본의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
나약한 황제로 서술된 역사를 뒤집고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는 있지만
결과는 처참하게 끝이 나 안타깝기만 하다.
황제는 모든 권한을 부여 받은 만큼
국가경영의 결과에 있어서도 총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허나 황제의 나라와 백성을 위한
크나큰 몸부림을 쳤지만
국민들의 마음에는
아련한 옛 향수 정도로 자리하고 있다.
나약한 황제의 모습과 인기 없는 조선왕조................
셀라시에황제와 고종황제의 공통점은 참으로 많다.
역사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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