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ㅺ 방랑 삼천리/서화창악의 진도

금골산은 진도의 미니 금강산

arakims 2008. 7. 13. 12:52

진도대교관광을 마치고 읍내를 향하여 가다가 약 십여분 안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데

어쩌면 이집트의 스핑크스보다 더 당당한 모습으로 금골산이 나타난다.

 

진도의 작은 금강산이라 하는데 그리 말해도 되는지는 가보고 판단했으면 한다.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위치한 금골산은 200미터가 넘지 않아 아기자기한 장면을 여러번 연출해 준다.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형성된아름다운 산으로 석굴 세 개나 있고 금성초등학교의 교정에는 고려말에 세워진 5층석탑(보물 제 529호)과 산 중턱의 굴에 마애여래좌상(전남 문화재자료 제 110호)이 음각되어 있다. 부근에 최근에 복원된 해언사라는 절이 있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이 생각나서 마침 지나가는 나이드신 주민에게 묻기로 하였다.

나의 눈 앞에 학교 건물.(군내중학교)이 보이는 위치에 선채 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뚝뚝하지만 오른쪽으로 가란다.(나중에 알았지만 왼쪽으로 가야 제대로 된 등산로가 나타난다.)

이 길은 아직 등산로로 개발되지 않은 곳으로 난 수집가들이 다니거나 정말 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적당해 보였다.

험한 바위를 덮드리다 시피하고 지나면 수많은 가시덩굴들이 나타나고, 잘 못하면 미끄러져 떨어질 것같은 길도 나왔다.

처음 들어서는 길은 완만한 능선이었지만 갈수록 가파르고 험한 바위가 나타나 상당히 고생스런 길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상에 오르니 시원스럽게 주변 경관이 펼쳐진다. 바위 투성이인 척박한 곳이지만 식물들은 잘 자란다.

산위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누리는 뿌듯함과 상쾌함인 것 같다.

 가쁘게 몰아쉬며 내뿜은 콧바람을 잠시 잠재우고

찍은 셀카!

나도 어느새 이렇게 되었나 싶다. 마음은 항상 그대로 이지만 거시기는 좀 변한 것을 알겠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진도와 울돌목 너머 해남까지 훤히 드러나 보인다.

멀리 제법 큰 산인데 황톳빛으로 보이는 것이 무슨산인지 묻는다.

진도 해남은 제법 지리를 익숙히 알고 있어서 한마디로 '옥매산'

 옥매산은 일제시대부터 옥과 납석을 채광해오던 곳이다.

황산면, 문내면 일대에 있는 학교의 교가나 교표에는 반드시 옥매산이 들어가 있다.

당시에는 명산이었기에 산의 정기를 받으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지금은 산 중턱까지 사라져버린채 폐광이 되어 볼썽 사납게 되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두개의 학교가 보이는데

왼쪽에 위치한 것이 군내중학교 전경이다.

 정상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금성초등학교 전경이다.

금성초등학교 교정에 보물 제 529호 금골산 오층 석탑이 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든다.

금골산 오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4.5미터의 단층기단 오층 석탑이다.

1층 탑신부를 구성한 기법은 정읍 온천리 3층석탑(보물 167호 고려시대)과 비슷하다.

옥개석(지붕틀)은  길고 넓게 처리한 원래의 형태를 벗어나 만들어졌으며 옥개석 받침은 5단의 밭침으로 편평하고 각층의 탑신도 매위 길게 조성되었다

전체적으로 조형미는 갗추지 못하였지만 우리나라 최남단에서 발견된 석탑이라는 점에서 석탑양식의 남하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주목된다.

이 곳에는 고려시대부터 해월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탑은 백제석탑의 영향을 받아 고려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상에서 밧줄이나 사다리 길을 내려오면 중턱에서 굴암을 만나게된다.

 

산 위에는 세 개의 석굴이 있는데, 맨 왼쪽 굴 북쪽 벽에는 1470년 전후에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좌우 3.5m 크기의 미륵불이 있다.

 

 이런 불상을 만나면 비슷하게 듣게되는 전설이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불상의 가슴 구멍에서 매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귀한 손님이 오�는데 먹을 양식이 부족함을 알게된 스님은 조금더 많은 양식을 마련하기 위하여 막대기를 준비하여 욕심을 부렸다. 그 뒤로부터 다시는 양식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여 욕심을 부리지 말고 살지어다~~~~~~~~~~~~~'

그런 전설인데 믿거나 말거나.....''잘 못 들었으면 ♬ 다시 들으면 되고~~~''

 1498년 정언벼 슬을 지낸 이주(李胄)가 무오사화때 이곳에 유배되어 금골산의 아름 다움에 감탄,『금골산록』을 지어 서거정의 동문선에 실려 오늘에 전 해오고 있다.

이런 돌들은 분류학상 어떻게 되는 지 모르겠다. 마치 그물을 연상케하는 숭숭 뚫린 모습이 자연의 오묘함을 전해준다.

석수가 수만 년에 걸쳐 예술품을 조각해 놓은 듯  기암의 색깔 또한 황색, 백색, 흑색, 회색 등으로 다양하다.

또 서거정의 동문선 금골산록편에는 "영험이 많은 금골산이 매년 빛을 발해 유행병 등 재앙을 막았으나 미륵불이 조성된 후 빛을 발한 적이 없다""라고 해 민간신앙의 변천 모습을 보여준다.

 

정상부근의 사람 머리 형상을 한 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서는 금방 굴러버릴 듯한데

지진이 적은 우리의 자연에서 이룰 수 있는 멋이다. 유명한 흔들 바위처럼 되어 있는데

멀리 보면 하단 부분을 통하여 하늘이 보인다. 그러나 수천년 힘든 자세로 한 껏 멋을 부리고 있어

자연이 주는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명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