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문무 대왕릉을 찾았다.
그러나 너무나 황당했다.
바닷가에 드문드문 사람들이
모래밭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잘 못 온 것이 아닌가 해서
물어보았다.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들 가운데 왕릉이있다는 것이다.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
사적 158호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옆에 보이는 대왕암은 삼국통일이라는 위업을 완성한 신라 제 30대 문무대왕(재위 661-681)의 바다무덤이다.
대왕암은 바닷가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길이 약 20미터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 조그마한 수중 못이 있고 그 안에 길이 3.6미터, 머비 2.9미터, 두께 0.9미터 크기의 화강암이 놓여 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라는 대왕의 유언에 따라 불교식 장례법으로 화장하여 유골을 이곳에 모셨다고 전한다.
대왕암은 가까이 있는 이견대, 감은사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문무대왕의 거룩한 호국 정신이 깃들인 곳으로 이런 형태의 능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여기를 문무대왕의 유골을 뿌린 곳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문무왕릉에 다다르기 전에
탑이 나란히 서있는 빈 절터를 발견하였다.
이름하여 감은사터라한다.
감은사터가 어떤의미를 지니고 있느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시험공부하느라 외웠던 기억이 난다.
잘 모르면 4층 석탑으로 말하기 쉬운데
저와 같은 모습의 탑을
3층 석탑이라 한다.
보통의 탑과는 달리
탑의 꼭대기에는 철 심이
당당하게 꽂힌 것이 사뭇 달랐다.
여기에도 체험학습 가정이 많이 보였다.
감은사터 삼층석탑
사적 31호 국보 제112호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는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이 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여 신문왕 2년(682)에 완성한 절이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동해의 대왕암에 장사를 지낸 뒤, 용이 된 부왕이 드나들게끔 금당 밑을 특이한 구조로 된 공간을 만들었다.
금당 앞에 동서로 서 있는 삼층 석탑은 높이가 13.4피트로 장대하며 제작 연대도 확실하다. 이중 기단 위에 몸체돌을 세우고 처마밑은 층단을 이루었으며 지붕 위는 곡면을 이루어 우리나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인다.
1959-1960년에 서탑을, 1996년에 동탑을 해체 복원했다. 서탑과 동탑에서 금동제 사리함과 그 속에 사리가 들어있는 수정으로 만든 사리병 등이 발견되어 통일 신라시대 탑속에 사리장치 연구의 열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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