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끝나고 잠시 평화가 오는 듯했지만 일본은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때 조선 수군이 명량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섬멸했던 전투를 명량대첩이라 한다.
이순신은 모함을 받아 수군 통제사에서 물러난 뒤 원균(元均)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일본 수군과 맞서 싸웠으나 다대포 칠천곡에 대패하여 해상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원균의 패전으로 조정에서는 같은 해 백의종군(白衣從軍) 중인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패전 후 겨우 남은 13척의 전함과 수군을 정비하여 다가올 해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8월 왜선 8척이 남해 어란포(於蘭浦)에 출현하자 이를 격퇴하고, 군영을 진도에 있는 벽파진으로 옮겼다.
9월 7일 서쪽으로 이동하던 왜선 55척 중 호위 적선 13척이 어란포에 나타났다
이순신은 한밤중에 직접 지휘하여 적선을 격퇴시켰다.
다시 적의 함대가 어란포에 접근한다는 보고를 받고
9월 15일에 벽파진에서 우수영으로 진을 옮겨놓고 하신 말씀
죽을 각오로 싸우는자 살것이요. 살려고만 하는 자는 죽게될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이 전해온다.
9월 16일 왜선 133척이 어란포를 떠나 명량해협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에 13척의 전선과 군사, 어선 등을 정비하여 왜장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도도 다카토라가 지휘하는 왜선
133척을 무찌르게 된다.
이 싸움으로 조선은 다시 바다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며
정유재란을 끝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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