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조국해방이 이루어지던 시절까지
민족의 애환과 감정의 주파수를 맞추어주던 대중 민요곡 '목포에 눈물'이 이제는 우리의 곁을 떠나고 있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에게는 정서적 주파수가 도대체가 맞지 않나 봅니다.
트로트는 구시대의 산물로 보이고 국적불명 랩송류가 넘쳐나지만 한때 유행이려니 했었지만
한류 열풍이 한차례 휩쓸고 난 뒤부터 우리 정서와 맞던 아니던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으로 정착되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노래의 가사도 변화가 많이 왔습니다.
나를 낮추고, 내자랑은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겸손의 미덕은 구시대의 산물이되었나 봅니다.
이젠 드러내 놓고 원더걸스의 'I am so hot' 즉 나는 잘났어, 그리고 잘 난 맛에 살아하는 정서가 이미 깔려버린
너무나도 많이 변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고깃배가 뜨지 않는 항구 목포, 연륙교의 가설로 연락선이 고동을 멈춘 고요한 항구
남폿불 아래 홍어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즐기던 어둠의 추억은 사라지고
밝은 가로등 아래 사랑을 가슴에 품는 시대가 왔습니다.
나뭇잎 떨구고 앙상하고 미끈한 가지만 남을 베롱나무 가장자리에 '이난영 나무'를 볼 수 있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오듯이, 이난영이 민족의 정서를 노래하였기에
풍요로운 세대에 들어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Tell me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006년 파주에서 이난영의 유해를 목포로 운구하여 베롱나무에 수목장을 하였다.>
무엇을 그리 소망하는가?
대삼학도에서 목포의 눈물을 노래하며 정상에 오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 축조된 소망탑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판사의 꿈, 부자의 꿈, 사업가의 꿈, 만선의 꿈, 사랑의 꿈, 출세의 꿈,
소망탑의 꿈이 언젠가 이루어지는 날 목포의 영광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산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데, 스무살 먹은 삼학여장군을 만날 수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는 목포는 무차별한 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소 삼학도는 주택지로 변하는 수모를 겪게된다.
뜻 있는 분들이 생각을 모아 남여 장승을 세웠다는 바위기록을 읽으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남 장승은 믿동이 썩어서 나뒹굴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만 여성의 수명이 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 우연의 일치이길 바라지만 현실이 그러한 것을 어떠하리
목포의 20년 앞을 내다보며 추모비를 세운 뜻이 돌에 자세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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