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숙제를 풀어낸 홀가분한 기분,
이런 마음일까요?
49년만의 제자들과의 만남
즐겁고, 화기애애한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분위기 같으면
하루종일 이야기가 이어질 듯 싶었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맛보라고
미국사는 딸이
여의도 콘래드 호텔을 잡아주었습니다.
42년 반의 교직생활을 마치면서
잘된 제자들을 만나면
반짝이는 보석 목걸이 같고
힘들어 하는 제자를 보면
나를 짓누르는
무거움 같은 것으로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늘 웃고 있는 표정을 연출하려 하겠지만
세월이 남긴 생채기는
그들의 모습 어딘가에 묻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어깨를 다독이며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게
50여년 묵은 쌓인 추억을 비집어가며
제자들과 만남이라는 자리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하영이 제자,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공주같은 새침한 생활은 아니었습니다.
늘
꽃을 가꾸고,
꽃과 함께,
꽃과 같은 마음으로
남에게 편안함을 주는 인상으로
성실한 삶을 살아왔음이 얼굴에 묻어나 있다.
남편 뒷바라지 잘했고 자녀 교육은 물론이고
본인도 교회에서도 권사 직분을 얻을 정도로
신앙심까지 두터웠기에
한국의 바람직한 어른으로
모든 여성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사진을 몇번이고 바라보아도
차분함과 성실함이 묻어난다.
성공하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꾸준함과 방향이 결정한다.
나는 하영이 제자의
성공적인 인생살이를 위해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자 합니다.
맹영이 제자
혈기 넘치는 고등학교 시절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 했다가
수재들이 다니는 광주일고
퇴학 그리고 배움의 단절이란 어려움 때문에
대학 진학의 길마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같은 학교 출신 '정오차'라는 분도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가 어려움을 겪긴 했었지만
이듬해 한양대학교 상경대에 진학하여
1학년때 가요제에서 '바윗돌'을 불러 히트하여
쉬운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음에 비해
불행하게도 나의 제자는
남들보다 무거워진 삶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 해서
그다지 평탄한 사회의 첫 걸음을 밟지는 못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자 이맹영은
어려움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꿋꿋이 삶을 개척하여
서울 양선교회 담임 목사로
복음을 전하면서
이땅의 굴곡지고 어두운 사회에
정의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사명감으로
커다란 횃불을 드높이며
수 많은 성도들을 하느님께 인도하고 있다.
이에 또한번 스승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너무 고마워 제자 이 맹영 목사님!"
작년도 윤사월쯤 미국에서 귀국할적에
나주에 있는 '농축산 공무원 연수원'에서
해외 입국자 코로나19 관련 격리차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과거에 나도 강사를 많이 해본 기억도 있고 해서
이런 연수원에서 강사하는 분들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었다.
추억속의 첫 제자 김재문 강사를 만나고
나의 갈증 같은 것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나의 제자 중에도 명강사가 있었구나.....
나의 첫제자 김재문 강사가
농축산 공무원 연수원에서
축산관련 전문 강의를 한다고 하니
전국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강사가 아닌가?
그래!
내가 잘 가르친 결과야!!
이런 자부심을 가져보게 한
나의 첫 제자 김재문 강사에게 고마움을 느껴본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환해 보인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처음부터 애를 많이 쓴
부산 사는 김영아 제자도 참석했더라면
화제꺼리도 더 풍성하고 즐거웠을 것인데...
빈 자리가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열심히 살다보면
작은 시간이라도
언젠가는 마련되리라 믿어본다.
고마워요, 제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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