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과 북풍, 그리고 남북 전쟁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평화연구소장)
지난 3월 26일 일어난 천안함 사고로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뒤덮이는 듯했다. 6월 2일의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겨냥해 이른바 ‘북풍’을 조장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선거운동 기간에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 언론이 군사적 긴장을 증폭시키며 전쟁을 부추긴 것이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기념관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 조처를 발표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분위기를 이끌었다. 군은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주위에 대형 확성기를 설치하고 북한 쪽으로 대량의 전단을 살포하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대규모로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북한은 현 상황을 ‘엄중한 전쟁 국면’으로 받아들여 전군에 전투 준비를 명령하고 확성기에 대한 조준 격파 등 '결정적 반격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했다고 보도되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보수 언론을 포함한 극우 세력은 노골적으로 전쟁을 부추겼다. “김정일을 골로 보내고 한국도 핵무장을 하자”는 선동도 등장하고, “침략 당했을 때 응징 전쟁을 안 하는 존재는 국가도, 정부도, 국민도, 인간도 아니다”는 막말도 나왔다.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칼럼도 나오고, “1km 앞에 북 초소 .... ‘사격준비 이상 무!’”라는 현장보고 기사도 나왔다. 5월 27일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군복 입은 사람들은 ‘전쟁’과 ‘응징’을 부르짖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현재 위정자들 가운데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만약에 전쟁이 터지면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들을 외국으로 보내지 않고 전선으로 보낼 수 있는 높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전쟁이 일어나면 결국 총 들고 싸우다 다치고 죽어가는 젊은이들은 대개 힘없고 돈 없는 서민의 자녀들이 아닐까. 대부분의 천안함 희생자들이 그렇듯이.
만에 하나 남북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서로 막강한 병력과 무수한 첨단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터에 전쟁을 하게 된다면 양쪽 다 불바다가 되고 잿더미가 될 게 뻔하지 않은가. 특히 요즘 전쟁에서는, 1990년대 코소보에서나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보듯, 군인들만 다치거나 죽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이 더 많이 다치거나 죽는다. 전쟁을 부추기고 좋아하는 극우 세력들만 죽는 게 아니라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도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 젊은 남자들만 죽는 게 아니라 여자들과 노약자들이 더 많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후방이라고 안전한 피신처가 될 수 없기에 휴전선 근처의 강원도나 경기도 사람들만 죽는 게 아니라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도 죽을 수 있다.
발행부수 1-2위를 자랑하는 대형 신문의 논설위원까지 "3일만 참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끔찍하고 충격적한 주장을 펴지만, 불바다와 잿더미 위에서의 승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쟁이 터지면 어느 한 쪽이 이기고 다른 쪽이 지기 보다는 양쪽이 공멸하기 쉬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6.25 기념일이 다가오면 보수 언론에서 변함없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내용이다. 전쟁을 피하는 듯한 답변이 돌아오면 안보 의식이 해이해졌다고 개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호전적인 질문을 하기 보다는 앞으로 제 2의 6‧25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는 식의 건설적인 물음을 던지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남북 양쪽의 극단적인 세력들은 전쟁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민족의 공멸을 불러올 수 있는 전쟁만큼은 피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쪽이 이길까, 미국이나 중국은 다시 개입할까, 다소 피해를 입더라도 통일이 되면 좋지 않을까 따위의 부질없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자. 남북 양쪽이 첨단 무기를 비롯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전쟁에서 이긴들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불바다와 잿더미 위에서 통일을 이룬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병을 잘 고치는 의사는 훌륭하다. 그러나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의사가 더 훌륭하다.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끄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다. 위기에 처한 북한을 자극하여 전쟁을 도발하게 하고 초전박살 낼 준비를 하기보다는 다소 양보를 하더라도 '호전적'인 북한을 어르고 달래어 화해와 협력을 통해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야말로 최고 최선의 안보다.
참고로, 20세기는 전쟁과 대학살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엄청난 학살이 저질러졌다. 20세기에만 전쟁으로 대략 1억 3천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제 1,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5년부터 시작된 냉전 기간에만 약 150개의 전쟁에서 적어도 2,200만명이 죽었다는 보고도 있다. 그리고 1990년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남으로써 대규모 전쟁의 가능성은 크게 줄었지만, 지역 분쟁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탈냉전 시대로 불린 1990년대부터만 따지더라도 약 80개 나라가 거의 100개의 전쟁에 휘말려 600만명이 넘게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전쟁의 희생자들 가운데는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이 2배가량 많다. 전쟁이 터지면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훨씬 크다는 사실은 전쟁의 야만성과 끔찍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1세기 들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이 동아시아다. 여기엔 다른 지역과 달리 공동 안보 기구가 없는 마당에 남북한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냉전 종식 이후에도 군비를 줄이기는커녕 지속적으로 군비를 증강해왔다. 이러한 동아시아 불안정의 핵심 요인은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다. 남북이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며 끔찍한 전쟁의 공포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되길 간절하게 기원한다.
[기독교세계]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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