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U.S.A/죠지아 주

남북전쟁 무명용사의 무덤 - 죠지아 달톤(Dalton)

arakims 2009. 8. 26. 09:08

 

 

아주 오래된 군복을 입은 사나이가

세상을 등지고 벌써 2세기가 넘게 돌아서 있다.

지울 수 없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지역의 갈등을 넘어서

생사를 가름하는 전쟁의 흔적을 안고서

사나이는 말이 없다.

잔디에 누운 저들도 누군지,

어떤 한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젊고 앳띤 젊은이의 모습으로 귀신이 되어

누워있을 뿐이다.

혹자는 이들을 무명용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소속도 없이,

아무런 이념이나 갈등도 모른채 분쟁에 휩싸여

싸우다 죽긴 했으나,

소속이 없어서 그냥

이곳에 묻혀있는 무적의 용사들도 섞여 있다.

 

 

 

Geogia Civil war heritage Trails (죠지아주의 남북전쟁의 역사적 흔적)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비교적 설명없이 알리고 있다.

남부지역을 지나다

이런 안내판을 만나게 되면

그 곳은 남북전쟁의 격전지 였음을 알아두십시요.

이런 곳은 쉽게 말하면

패전의 한이 서린 곳입니다.

 

 

 

421명의 밝혀지지 않은 남부연맹 지지자, 

4명의 남부연맹군

그리고 4명의 북부 연방 동맹군인들이

남북전쟁 중에 사망이나 부상 등의 이유로

결국 이 곳에 묻히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다.

Stone's강, Perryville, 치카마우가,

Lookout Mountain, 차타마우가, Missionary Ridge와

기타 지역에서도 전투가 치열해서 발생한

사상자를 모신 곳임을 밝히고 있다.

 

 

4명의 북부연맹군을 제외한 425명이

이 곳 전투에서 사망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이 곳에 묻혔다.

'생일 없는 소년'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이분들은 생일만 없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단지 남북전쟁중에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귀신이라도 있다면 그 한을 밝힐 수 있을 터인데......

 

포탄이 비오듯이 퍼붓는 전선에서

인간의 죽음을 애도할 틈이 없습니다.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지면 오로지

승리에만 집착하는

조직의 명에 의해 아군과 적군의 시체를

수습할 틈이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형체가 없어지기도 하고,

포탄에 맞아 땅위로 흩어져버린 경우는

이 곳에 편히 누울 수 있는 기회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죽어서 형체를 보존한 사람만이

이 곳에 묻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선택받은 경우입니다.

동정하여 그 밖의 사람은 구천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야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조직의 이념을 관리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죽지 않습니다.

손발이 되는 로보트 같은 병사들은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더라도

적을 죽여야하고 운이 좋게

살아남아야 훈장이나 가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지요?

전쟁은 당신이 죽어가야 끝이 나게됩니다.

 

링컨대통령의 명을 받아

북군을 승리로 이끌어낸

그랜트장군에게는 영광이 돌아갔고

패배한 남부연맹의 리장군은

항복 문서에 조인하고

고향 버지니아로 돌아가

대학총장이되어 후진을 양성하게됩니다.

지도자와 지휘자는 거래할 것이 있지만

말단 병사들에게는 거래할 것이 없고

단지 목숨을 저당 잡혀

운이 좋아야 찾아 갈 수 있는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 현상의 꼭대기에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부추기기가 있고,

선하게 말해서 애국을 통한 조국의 번영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삶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희생되었지만 운이 좋아

제삿날과 이름을 보전할 수 있으니,

살아 있는 자 다음으로 행복한 편입니다.

 

의미있는 인생으로 마감하기 위해서

하늘이 도와야하고,

좋은 곳에서 태어나야하고,

사람을 잘 만나야하는데

세가지를 다 충족하며

생을 즐기는

오늘의 한국인들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이겨야 내가 산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인간이 누구엔가에게 이겨야한다는 생각이

이기심을 부추기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집단으로 번지면

패거리가 조성되고

패거리들이 힘을 모으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게됩니다.

 

이긴자에게는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많은 무명용사들의 목숨의 대가라는 것을

언제나 알아 차릴까요?

동족의 피의 댓가로 적을 섬멸하고

승리감에 도취되는 

변질된 인간의 속성은

그 무엇으로 치료해야하는지

종교적 신념으로

점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깃발을 누군가가 소리없는 아우성이라 했던가?

용감한 병사라는 외침앞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훨훨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달려드는

불나비와 뭐가 달랐단 말인가....

남부연맹의 이념에 따라

깃발아래 전투에 용감하게 참가하고,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패배한 남부연맹 소속이어서 그런지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명분이 있건 없건 어떤 전쟁에 휩싸이더라도

이긴 전쟁의 무명용사는 더 돋보이고

반대편을 멸시하는 것은

누구나 평등해야 할 인간이 아니던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면

누구나 똑같이

추모의 장소에 함께 있어야 한다.

승자나 패자

모두 깃발의 뜻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 아니었던가?

적어도 이곳에는

지휘관은 함께 눕지 말도록 해야한다.

망자들이 편히 눈을 감고

영면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