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와 함께/하모니카 연주

목포의 눈물을 하모니카로

arakims 2009. 3. 3. 20:52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찧다 옛상처가 새로워진가
못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목포의눈물 Am delay light echo hall.mp3

 

이난영(李蘭影) 목포 양동 출신으로 본명은 이옥례라하며 이남순(李南順)의 장녀로 태어났다.

1916.6.6에 태어나 1965. 4. 11 서울 회현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목포공립보통학교(현 목포북교초등학교)를 4학년 수료후 가정형편상 자퇴

엄마와 함께 제주도의 생활을 하다 극장경영 주인 아이를 돌보게 되었는데
흥얼거리는 노래소리를 들은 집주인이 재능이 있는 아이로 인정하고
막간가수(영화나 연극이 시작 되기전 나와 노래하는 가수)로 소개해주었다.
이어 삼천리 가극단장이 특별단원으로 채용하게 되고

1932년 열여섯살 되던 해에 불세출의 가수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단장이었던 박승희에게 예명 '난영'을 얻게되었으며
이후 OK레코드 이철 사장과 만남 -> 작곡가 손목인 -> 목포출신 문일석 작사인[목포의 눈물]을 곡에 붙여

부르게 된 것이 드디어 노래의 여왕 이난영이 탄생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일보 주관 전국6대도시 애향가 모집 작품 3000여편중 문일석의 '목포의 사랑'이란 가사가 최우수로 뽑힘) 

비음이 섞인 경쾌한 창법이 그녀만의 특징이며, 트로트와 신민요를 비롯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 능했다 한다.

 

 

지금이야 드라마나 힛트곡에 나오는 명소는

교통이 발달하여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가볼 수 있겠지만

목포의 눈물에 등장하는 항구도시는 일약 애틋하고 추억에 잠겨있는 조선인의 망향중에 하나가 되었을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물에 젖은 항구 목포를 새기는 것은 잃어버린 조선에 대한 필연적인 가슴속의 봉기였을 것이다.

해방이 되어 행복해진 지금까지도 우리의 마음속에 흐르는 유전인자로 각인되어 있지 않다면

어찌 지금까지 애창곡이 될 수 있었으리요

 

 

1965년 4월 11일에 세상을 등진 그녀는 4남3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모두 미국에서 가수로 활발하게 활동하여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가고 있다. 

 

1968년부터 가수 개인의 이름을 건 가요제는 오직 '난영가요제' 하나뿐이라고 하며

해마나 목포에서 개최되어 훌륭한 가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유달산에 목포의 눈물비, 삼학도에 이난영 공원이 있다.

(이난영 관련 블로그 보기 => http://blog.daum.net/arakims/15958064)

 

목포의눈물 Am delay light echo hall.mp3
2.36MB